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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태 빽가가 독립운동가 후손 연예인이었다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든든한 버팀목 진희창 선생을 기억하며

by 맘그린 2026.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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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태 빽가가 독립운동가 후손 연예인이었다고? 상하이 임시정부의 든든한 버팀목 진희창 선생을 기억하며

코요태 빽가가 독립운동가 진희창 후손 연예인

우리가 방송에서 유쾌하고 밝은 모습으로 자주 만났던 그룹 코요태의 멤버, 빽가(본명 백성현)의 숨겨진 가족사 이야기입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멤버들에게조차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가슴 깊은 이야기를, 그가 광복절을 맞아 세상에 수줍게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그 감동적이고도 가슴 뭉클한 헌신의 기록, 그리고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위대한 독립운동가 진희창 선생의 삶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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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의 침묵을 깨고 고백한 독립운동가 후손 연예인 코요태 빽가의 숨겨진 가족사

우리에겐 친근한 예능인이이자 유쾌한 아티스트로 잘 알려진 빽가 씨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동안 조심스럽게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바로 그의 외증조부께서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셨던 독립운동가 '경림(景林) 진희창' 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빽가는 어머니께서 생전에 늘 하셨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집은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이란다. 어디 가서 절대로 기죽지 말고, 마음속에 늘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라.

그렇다면 왜 이제서야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을까요? 빽가는 예전부터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이제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생겼기에, 형편이 어려운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을 실질적으로 돕기 위해 용기를 내어 외증조부의 이름을 세상에 전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그 따뜻한 마음씨가 선조의 고결한 뜻과 너무나 닮아 있어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든든한 베이스캠프, 진희창 선생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독립운동가 후손 연예인 빽가의 외증조부이신 경림 진희창 선생은 과연 어떤 분이셨을까요?

진희창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라는 원통한 국권 피탈을 겪으신 후, 1911년 조국의 독립을 도모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셨다고 합니다. 상하이에서 영국인이 운영하던 전차회사의 감독으로 일하셨는데요, 이 직업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독립투사들을 돕기 위한 완벽한 위장 막이 되어주었습니다.

  • 독립투사를 위한 비밀 거처 마련: 일제의 눈을 피해 고국을 떠나 상하이로 건너오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안전한 아지트와 숙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 독립운동 자금 지원: 낮에는 전차회사 감독으로 일하며 번 소중한 자금을 임시정부 운영과 독립투사들의 활동비로 아낌없이 대어주셨습니다.
  • 상하이 베이스캠프 역할: 낯선 타국 땅에서 길을 잃기 쉬운 독립지사들에게 이정표가 되어주고, 임시정부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습니다.

빛나는 조명 아래 서는 영웅도 필요했지만, 어두운 그늘 속에서 목숨을 걸고 독립투사들의 뒤를 받쳐준 진희창 선생 같은 분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멈추지 않고 달릴 수 있었습니다.

 

진희창 선생,  국호 '대한민국'을 제정한 역사적 순간에 함께하다

진희창 선생의 업적 중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1919년 4월 10일 밤,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열린 임시의정원 첫 회의입니다.

이동녕, 신익희 선생 등 내로라하는 독립지사 29인이 모여 밤새 머리를 맞대었던 그 역사적인 자리에 진희창 선생 역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당당히 참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를 통해 마침내 우리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하는 임시헌장을 공포하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부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의 첫 출발점에,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뼈대를 세우는 그 뜨거웠던 역사적 현장에 빽가 씨의 외증조부 진희창 선생이 함께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가슴 아프게도, 밤낮없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며 온몸을 바치셨던 진희창 선생은 그토록 바라시던 조국의 광복을 눈앞에 보지 못하셨습니다.

독립을 향한 열망을 품은 채 1933년 2월, 중국 상하이에서 눈을 감으시며 순국하셨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숭고한 희생과 공훈을 기리어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1911년: 상하이 망명 및 전차회사 감독으로 독립투사 지원 시작
  •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의원 참석, 국호 '대한민국' 제정 참여
  • 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 교민 사회 및 임시정부 재정·운영 지원
  • 1933년 2월: 상하이에서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순국
  • 1980년: 대한민국 정부,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백범 김구 선생도 잊지 못했던 동지, 진희창 선생의 헌신

진희창 선생의 이름은 놀랍게도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인 《백범일지》에도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 하권에 진희창 선생을 떠올리며 이렇게 적으셨다고 합니다.

진희창 같은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나를 정성껏 도왔다.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공포와 극심한 배고픔 속에서 백범 김구 선생을 따뜻하게 맞아주고 식사를 대접하며 끝까지 동지로서 곁을 지켜준 사람이 바로 진희창 선생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에 직접 이름을 적어 감사함을 표현할 만큼, 진희창 선생은 임시정부의 중심 인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하고 진실된 동지였습니다.

또한 선생은 교민 자치 조직인 '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에서 의사원으로 활동하시며, 타향살이에 지친 교민들의 삶을 돌보고 임시정부의 재정을 뒷받침하는 데 평생을 바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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